호주에서 스코티쉬랑

떠나감....그리고 마티즈.

성은정이 2003. 10. 17. 08:26
아무나 부모가 되는건 아닌가 보다.

지난 몇일간 우리는 얼마나 구름위에 떠있었던가.
그래도 확신을 기하자는 생각에서 병원을 찾아가
하루에 팔 한쪽씩 피를 뽑아 검사를 하면서도 하나도 아파하지 않고 만족할 결과를 기다렸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면서
혹시 아이가 생겼으면 기념으로 아기 기저귀를 사고,
아니라면 내 차를 보러가자고 했다.

"I'm sorry..."
결과를 말해주는 의사가 더 미안해한다.
잔뜩 기대했었는데..
겨우겨우 눈물을 참았는데 차안에서 위로해 주는 샘의 한마디에 오히려 눈물이 뚝뚝 흐르고 만다.

"그냥 집으로 갈까?"
"아니. 차 보러 갈래. 아무래도 나한테 일이 필요할것 같애"
우리는 주말에 보고왔던 대우자동차로 향했다.

사실 나는 괜찮다고 했었지만 샘의 친구들이 더 난리였다.
은정이 그렇게 집안에만 있다보면 미쳐버릴지 모른다고.
빨리 차를 사줘야 한다고..

내 기분을 달래주려고 했는지 샘은 좀 무리해서 계약서를 쓴다.
오토가 아니어서 걱정은 되지만 샘이 가르쳐 준다니
나도 그냥 오케이 했다.
01년 모델 5만킬로를 달린 흰색 마티즈.
그런데도 가격은 8백만원.
우리나라 새차 가격과 맞먹는다.
은행 대출로 사는거라 이제 부지런히 갚을일만 남았지만
우리나라 차를 샀다는게 그나마 위로가 됐다.

샘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우직원들에게
"알다시피 마티즈가 한국차인데 나의 와이프가 한국사람이에요"하고 말을한다.
(나는 예전에 외국에 나와있는 '대우'나 '현대'에 우리나라 직원이 상주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100%현지 사람들이다.)

어찌됐건 마티즈 덕분에 오후의 우울했던 기분은 조금 날려버리로 했다.
월요일에 임신했다고 전화드렸던 샘의 부모님께 알고보니 아니더라고 다시 전화드리고..
(그러길래 내가 정확히 병원결과 나오면 말하자니깐..)

아이는 내가 내년에 한국에 다녀온뒤에 천천히 갖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동안에 수동식 차운전 연습 부지런히 하고, 가능하면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직장을 갖게되면 영어도 늘고, 돈도 벌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여러가지로 좋을테니까.

기다리면 오히려 안생긴다더니..
자기도 내심 많이 서운했을텐데
나 위로하느라 정신없는 샘을 보며
뭔가 하나를 놓쳤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남편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한것 같은 마음에,
나는 여전히 행복한 사람임을 포근히 안아주는 샘의 따뜻한 팔과 가슴에서 오래도록 느껴본다.



숨쉴때마다 행복하세요.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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